흙 한 덩이가 1300도의 불을 견뎌 한 잔의 백자가 된다 — 흙결(土結) 도자 공방 브랜드 사이트 제작기

처음 마주한 가마, 한 가마분의 백자

의뢰는 오래된 종이 한 장에서 시작됐다. 35년째 백자만 빚어 온 도예가가 갤러리 도록에 적힌 메일 주소로 받은 해외 컬렉터의 문의들을 보여줬다. 사진은 핸드폰으로 찍은 것을 그대로 첨부 파일로 보내고 있었고, 작품 설명은 매번 워드 파일로 다시 적고 있었다. 보여 줄 사이트가 없어서 한 통의 메일을 쓰는 데 한 시간이 걸리는 상태였다. 첫 미팅은 새벽 다섯 시 반, 가마 앞 마당에서 시작됐다. 그날 가마가 식고 있었고, 마당에는 식은 가마에서 막 꺼낸 한 가마분의 백자가 흰 천 위에 줄지어 놓여 있었다. 사이트의 첫 화면이 어떻게 끝나야 하는지가 그 자리에서 정해졌다.

백자의 색은 흰색이 아니다

도예가는 백자가 흰색이 아니라고 했다. 가마 불이 어느 부위에서 더 강했는지, 유약이 어떻게 흘렀는지에 따라 같은 가마에서도 색이 모두 달라진다. 사이트에서 흔히 쓰는 순백(#FFFFFF)을 배경으로 두면 작품 사진의 미색이 칙칙해 보였다. 결국 배경부터 다시 잡았다.

  • 배경: #F6F2EA, 백자의 가장 옅은 미색을 그대로 옮겼다.
  • 본문: #1F1B16, 검정 대신 가마 안의 그을음 톤.
  • 강조: #B8975A, 유약 흘러내린 가장자리의 은은한 황금색을 액센트로만 썼다.

같은 사진이 사이트 배경 위에 올라가자 흰빛이 살아났다. 작품 사진에 후보정으로 색을 넣는 대신, 배경의 색을 양보하는 쪽을 골랐다.

1300도의 불을 한 컷의 영상으로

도예가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시간은 가마에 불을 넣고 사흘을 지키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사이트에 담고 싶다고 했지만, 사흘짜리 영상을 첫 화면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가마 불꽃이 1300도까지 오르는 30초 분량의 슬로우 모션으로 잘라 첫 화면에 두기로 했다. 영상은 WebM과 MP4 두 포맷으로 인코딩하고, 첫 프레임은 별도의 정적 이미지로 깔았다. 모바일 데이터에서는 자동 재생 대신 정적 이미지가 먼저 뜨고, 사용자가 탭하면 영상이 흐른다. 가마 안의 붉은빛이 사이트의 미색 배경과 부딪치며 화면 안에 작은 가마가 하나 생긴 듯한 인상을 만들었다.

일본·미국 바이어를 위한 다국어 구조

의뢰의 절반은 일본에서, 다른 절반은 미국 동부의 갤러리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단순한 번역 토글 대신 국가별로 분리된 URL과 메뉴를 두기로 했다. 일본 바이어가 한국 사이트에 잘못 들어왔을 때 다시 한국어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hreflang 태그와 첫 방문 시 언어 안내 배너를 함께 두었다. 메뉴는 공방 소개 / 작품 갤러리 / 가마 일정 / 구입 문의 네 가지로만 정리했다. 작품을 더 잘게 카테고리로 나누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도예가는 "가마는 한 번 열릴 때 모든 작품이 한꺼번에 나온다"고 했다. 갤러리 페이지도 그 가마의 순서를 따라가도록, 가마별로 한 묶음씩 작품이 보이게 그리드를 짰다.

주문이 아니라 문의가 먼저다

처음에는 사이트에 결제 기능을 붙이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도예가는 거절했다. 한 점이 200만 원을 넘는 작품에 "장바구니에 담기" 버튼을 두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작품 상세 페이지마다 가격 협의 문의 폼을 두고, 일본어·영문 폼은 자국어로 회신을 받겠다는 안내를 명확히 적었다. 첫 번째 자동화는 결제가 아니라 문의 라벨링이었다. 폼에서 들어온 메일이 도예가의 받은편지함에 도착할 때, 작품 번호와 언어가 제목 앞머리에 자동으로 붙도록 했다. 사흘에 걸쳐 답장을 쓰던 시간이, 작품을 빚는 시간으로 돌아갔다.

가마 열린 날, 첫 영문 주문이 왔다

사이트가 열리고 정확히 6주가 지난 어느 새벽, 도예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뉴욕의 한 갤러리스트가 첫 화면의 가마 영상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했고, 그날 받은 영문 문의가 일곱 통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사이트 하나가 가마 앞 새벽 시간을 처음으로 국경 너머에 전달한 셈이다.

한 점의 백자가 100년을 견디기 위해서는 1300도의 불이 필요하고, 한 사이트의 첫 화면이 그 불을 옮기기 위해서는 두 달의 대화가 필요하다.

전통 공방 사이트,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전통 공방의 사이트는 일반 회사 사이트와 다르게 출발해야 한다. 장인의 작업 시간 안에 들어가 그 결을 옮기는 일이 첫 단계이고, 화려한 그리드나 애니메이션은 그다음 문제다. CYAN은 도자뿐 아니라 한지, 매듭, 나전, 누비, 옻칠, 한옥 스테이까지 한국 전통 공방의 브랜드 사이트를 함께 만들어 왔다. 사이트를 통해 공방의 시간을 국경 너머로 옮길 계획이 있다면, 첫 미팅은 새벽의 가마 앞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