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는 옻칠한 칠흑의 바탕 위에 전복·소라 껍데기를 머리카락보다 얇게 갈아 붙여,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이 흐르게 하는 공예다. 이번에 의뢰를 주신 곳은 30년 넘게 자개를 끊고 이어온 작은 공방이었다. 사장님의 첫마디는 이랬다. "실물은 빛이 살아 움직이는데, 사진으로 찍으면 그냥 까만 칠기 한 점이 돼버려요." 브랜드 사이트가 풀어야 할 숙제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의뢰 배경 — 빛이 담기지 않는 공예
공방은 이미 블로그와 오픈마켓 입점을 거쳤지만, 정작 작품의 가치를 보여주지 못해 헐값 비교에 시달리고 있었다. 손님은 자개의 영롱함을 직접 봐야 지갑을 여는데, 온라인에는 그 빛의 결이 빠져 있었다. 우리는 사이트의 목표를 '판매'가 아니라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인상'으로 다시 정의했다.
기획 — 어둠을 배경으로 삼다
대부분의 공예 사이트가 밝고 깨끗한 흰 배경을 쓴다. 우리는 반대로 갔다. 나전의 주인공은 빛이고, 빛은 어둠 위에서만 살아난다. 그래서 전체 톤을 칠흑에 가까운 짙은 먹색으로 깔고, 자개의 영롱한 무지갯빛만 포인트로 남겼다.
- 다크 베이스: 작품 사진이 화면 밖 배경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 한 점씩 보여주기: 그리드에 욕심내지 않고, 스크롤마다 작품 하나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 제작 서사: '끊음질–줄음질–옻칠'로 이어지는 공정을 짧은 글과 사진으로 풀어 가격이 아닌 시간을 설명했다
디자인 — 각도에 따라 흐르는 빛
가장 공들인 부분은 작품 이미지였다. 한 장의 정면 사진으로는 자개의 진가가 드러나지 않아, 같은 작품을 빛의 각도를 달리해 여러 컷으로 담았다. 마우스를 올리거나 화면을 기울이면 사진이 천천히 전환되며, 실제로 작품을 손에 들고 돌려보는 듯한 각도의 변화를 흉내 냈다. 무거운 라이브러리 없이 CSS 전환만으로 구현해 모바일에서도 끊김이 없었다.
타이포와 여백
장인의 30년을 가벼워 보이게 할 수는 없었다. 제목에는 획이 단정한 명조 계열을, 본문에는 가독성 높은 고딕을 섞고, 작품 사이 여백을 넉넉히 두어 갤러리에 온 듯한 호흡을 만들었다.
개발 — 보여주되 번거롭지 않게
공방 사장님은 컴퓨터에 능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관리자 화면에서 사진을 올리고 설명만 적으면 갤러리가 자동으로 정리되도록 만들었다. 주문은 결제 시스템 대신 맞춤 문의 폼으로 받았다. 나전칠기는 대부분 주문 제작이라, 결제 버튼보다 "이런 걸 만들고 싶다"는 대화의 시작점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문의가 들어오면 사장님 휴대폰으로 알림이 가도록 연결해, 작업장에 있어도 놓치지 않게 했다.
결과 — 다시 '작품'으로 불리다
오픈 후 한 달, 공방에는 "사진만 봐도 빛이 느껴진다"는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격부터 묻던 손님 대신, 제작 기간과 의미를 묻는 손님이 늘었다. 같은 작품이지만 노출되는 자리가 바뀌자 대접이 달라진 것이다.
전복 껍데기 한 조각이 실처럼 갈려 칠흑 위에서 빛이 되기까지, 장인은 수천 번 손을 움직인다. 그 시간을 화면 안에 옮기는 일이 우리가 맡은 몫이었다. CYAN은 작은 공방과 가게의 가치가 온라인에서도 제값으로 보이도록, 업종의 본질을 먼저 읽고 사이트를 짓는다. 보여줄 것이 분명한데 보여줄 자리가 없다면, 그 자리를 함께 만들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