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의 결을 화면에 담는다는 일
누비는 천 두 겹 사이에 얇은 솜을 깔고 그 위를 0.3~0.5cm 간격으로 한 땀씩 손으로 누벼 만드는 우리 옛 바느질 기법입니다. 충북 청주 외곽의 작은 공방 누비결(縷飛結)은 어머니에게서 이 기법을 이어받은 30대 작가가 누비 이불과 베개, 생활 의류를 짓는 곳입니다. 한 작품을 짓는 데 보통 한 달, 큰 누비 이불은 석 달이 걸립니다. CYAN에 사이트 제작을 의뢰하면서 작가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사진만으로는 이게 왜 이 가격인지 설명이 안 돼요."
화면에서는 솜의 두께가 보이지 않는다
누비의 가치는 손에 들었을 때, 바늘땀 사이의 미세한 결을 가까이서 봤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일반 쇼핑몰처럼 정면 사진을 큼지막하게 깔아 두는 방식으로는 그 깊이를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이트 전체의 시각 언어를 처음부터 다시 짜기로 했습니다.
매크로 사진과 8초짜리 영상
누비 표면을 5cm 거리에서 찍은 매크로 사진을 메인 영역에 전면 배치했습니다. 실 한 가닥의 굴곡과 천의 결, 솜이 만들어 내는 부피감이 화면을 가득 채우도록 한 의도였습니다. 여기에 바늘이 천을 들어 올렸다 내려놓는 8초짜리 짧은 루프 영상을 더해, 작가가 들인 시간 자체를 보여 주었습니다. 정적인 사진 한 장보다 짧은 움직임 하나가 누비의 정체를 훨씬 빠르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광목 톤과 천연염색의 색조
배경은 흰색 대신 광목 톤의 옅은 베이지(#F4EFE6)로, 본문 글자는 진한 먹빛(#2A2620)으로 잡았습니다. 강조 색은 천연염색에서 자주 나오는 쪽빛과 감색 두 가지로 한정해 사용했습니다. 누비 작업이 본디 정적인 깊이를 가진 일이라, 사이트의 색감도 그 결을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본문 행간과 섹션 여백
한글 본문의 행간(line-height)을 평소보다 넓은 1.9로 잡고, 섹션 사이 여백을 화면 높이의 30%까지 비웠습니다. 누비를 한 땀씩 누비는 호흡과 화면을 읽어 내려가는 호흡이 비슷해지도록 의도한 설계였습니다. 페이지를 빨리 스크롤하면 빈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품을 천천히 보아 주실 분이 우리의 고객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결정이었습니다.
오픈 석 달, 1년치 작업이 사이트로 들어왔다
사이트 오픈 3개월 동안 사전 주문 11건이 접수되었습니다. 평균 객단가는 60만 원대였고, 그중 두 건은 100만 원이 넘는 누비 이불이었습니다. 작가가 1년에 지을 수 있는 작업량의 대부분이 사이트 한 곳을 통해 들어온 셈입니다. 운영비는 도메인과 호스팅을 합쳐 월 2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공예 브랜드 사이트는 '팔지 않는 듯 파는 곳'이 되어야 한다
누비결 작업을 마치며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공예 브랜드의 사이트는 일반 쇼핑몰의 문법으로는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큰 할인 배너와 카운트다운 타이머, 인기 순위 같은 장치는 오히려 작품의 가치를 깎습니다. 작가가 한 땀을 어떻게 놓는지, 천 한 폭을 짓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왜 이 색을 골랐는지를 차분히 보여 주는 사이트가 결과적으로 가장 많이 팔립니다.
CYAN은 누비결처럼 시간과 손을 들이는 작은 공방의 브랜드 사이트를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작업해 왔습니다. 화면 너머의 결을 어떻게 전달할지 함께 고민할 곳이 필요하시다면, 사진 한 장과 작업 이야기 한 줄을 보내 주셔도 좋습니다. 그 결이 어떤 사이트가 될 수 있을지부터 같이 그려 드립니다.